타인과 함께 있는 관측지

별별이야기 – 별똥쌤의 천체관측 이야기

새로 찾아낸 관측지는 알고보니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산 위에 있으며 포장된 도로가 있고 주변에 밝은 빛이 없는 곳. 이런 곳이 나만 아는 관측지일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이미 별 보는 사람들 커뮤니티에서는 은어로 불리며 비공개되던 장소였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 써야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휴대전화의 불빛이 다른 사람을 거슬리게 하진 않는지, 촬영을 위해 걸어둔 노트북 불빛이 새어나오진 않는지, 겨울에 차에서 몸을 녹일 때면 시동소리와 진동 그리고 뜻하지 않게 새나가는 불빛이 방해가 되진 않을지. 나한텐 거슬리지 않을 것들이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지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가며 관측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관측지에 나오는 것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보단 편하다.

함께 관측을 간 사이가 아니라면 이렇게 조명을 비추며 사진촬영 하는 일은 관측 에티켓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혼자 하는 관측은 많은 위험이 따른다. 도시의 빛과 멀어진다는 것은 문명사회와 물리적으로 멀어짐이다. 관측을 나가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리함이 사라진다. 가장 원초적인 배변문제에서부터 이제는 당연히 여겨지는 온라인 생활까지 문명에서 멀어지면 당장의 문제가 되버린다. 사나운 산짐승이라도 인근에 나타나게 되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천체관측자들은 최소한의 생존(?)장비를 함께 구비하여 다닌다. 하지만 언제나 그 준비가 완벽하진 못한 법이다. 예기치 못한 문제는 언제든 발생한다. 한겨울에 촬영을 마치고 철수하려는데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던지, 멀리까지 찾아온 관측지인데 나사를 조이는 공구가 없다던지, 타는 듯이 갈증이 나는데 물 한방울 없을 때던지. 이 때에 주변에 다른 사람이 낯선 오지에 함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누군가가 있다면 쉽게 해결되곤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관측지에서는 허세 가득한 셀카놀이도 가능하다.

  누군가와 같이 관측하는 일은 신경 쓸게 많은 번거로움이기도 하지만 행운이기도 한 것이다. 혼자서 고즈넉이 별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관측지에서 우연히 마주한 낯선 이와 함께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와 낯선 지역에서 만나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만남. 이런 만남의 기회를 마냥 피하기에는 천체관측의 즐거움 중,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     

천체관측자들이 모여있는 사진. 각자의 관측장비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둠 속에 ‘나 여기있오!’라고 알려준다.

평일에 회사일이 끝나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새로 찾은 관측지로 향했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라 관측지에 혹시나 누군가 관측을 하고 있진 않을까 싶어서 미등만 켜고 조심히 관측지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이미 망원경을 설치하고 관측을 하고 있었다. 어두운 곳이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가며 주차 하려했다. 먼저 관측을 하던 선객도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 내 주차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늦은 시간에 그곳까지 차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같은 관측인 이라는 것을 알았나 보다. 차에서 내려 가볍게 인사를 서로 나누며 뻔히 보이는 하늘 상태를 괜히 물으며 나도 관측을 하러 온 사람임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주차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뭘요.”

“관측 중이신가봐요. 저도 관측하러 왔는데, 하늘 상태 괜찮나요?”

“우리나라에서 몇 없는 날이 오늘인거 같네요. 관측하시려면 장비 피셔야죠? 아직 촬영 안걸었으니까 편하게 설치하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금방 설치하겠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제가 찍으려는건 아직 뜨지도 않았어요.”     

어둠 때문에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서로가 천체관측자임을 확인하곤 묘한 안심을 가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편하게 장비를 펼치라는 말에 붉은 조명을 켜고 차에서 장비를 하나씩 내리며 설치를 시작했다.

장비의 설치를 마치고 무슨 대상을 촬영할까 고민해본다. 그러다 문득, 관측하시는 분은 오늘 무엇을 촬영하시나 궁금해져서 몇 마디 말을 걸어보았다.     

“오늘 목표 대상이 무엇이세요?”

“안드로메다은하 촬영 하려구요. 원래 찍으려던 대상이 있었는데, 카메라 앞에 이슬이 껴버려서 촬영을 못하게 되버려서요.”

“아니, 카메라 앞에 이슬이 꼈으면 아예 촬영을 못하시는거 아녀요?”

“쓰던 카메라 말고.. 새로 산 카메라가 하나 더 있어서, 첫 개시하려구요. 이 카메라하고 지금 제 망원경 화각에 안드로메다가 꽉 들어와서 한번 찍어보려 하네요”     

 천체사진용 카메라가 한 두 푼 하는게 아닌데, 그걸 두 개나 가지고 다니시는 분이셨다. 다시보니 사용하시는 망원경도 기성품이 아닌 수제 제작한 망원경으로 정평이 나있는 것이었다. 같은 망원경을 소유한 지인이 계셨기에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망원경을 소유한 사람은 우리나라에 몇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 지인과도 아는 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꽤나 헤비한 천체사진가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천체사진용 카메라 제품에 대해서 몇 마디 더 나누고 또, 서로의 망원경 앞에 앉았다.   

IC5146 – 고치 성운과 그 주변

사진 정보

촬영날짜 : 2020/08/18/
렌즈 : W/O RedCAt
카메라 및 필터 : ZWO ASI1600MM PRO + ZWO LRGB set
가대 : Celestron Advanced VX
노출정보 : L – 300초 * 12매, RGB 300초 * 5매
후보정 : 제로,다크 전처리 및 DSS 합성 후 Photoshop 후처리, 크롭

촬영을 걸어두고 출출하여 차 옆에 식탁을 펴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몇 개를 끓일까 잠깐 고민하다가 선객 분과 함께 먹을 생각에 혼자 먹을 양에 하나 더 넣어서 끓이기 시작했다. ‘라면 끓일건데 드시겠습니까?’ 라고 하면 괜히 사양하실듯 하여 일단 끓여놓고 같이 드시자고 얘기할 참으로 먼저 일을 벌려놓았다. 라면이 준비되고 함께 드시자고 선객께 권하니 흔쾌히 자리로 오셨다. 라면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역시나 내가 아는 지인과 친분이 있으신 분이었다. 나의 지인에게 익히 들어온 이름이셨고,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천체사진공모전에도 입상을 여러 번 하셨던, 생각 그대로 헤비한 천체사진가셨다. 처음에는 조심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신분(?)이 까발려지고 난 뒤에는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까지 마무리 하는게 초대한 사람의 의무라며 벌려놓은 상차림에 선객께 손도 대지 못하게 한 후, 혼자 정리를 하며 생각했다.

  평소라면 마주치게 될 일도 없는,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깊은 산 속, 깊은 밤 시간 안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말이다. 해가 뜨고 장비를 정리하면 이제 또 각자의 도시로 돌아가 서로 다른 생활을 하지만 이런 오지에서 같은 관심사인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상황이 꽤나 즐거운 일이구나 라고 말이다.